번역괴담

[번역괴담] (29) - 일에 대한 자부심

아이버스 2024. 8. 28. 09:35

저는 맛있는걸 먹는게 취미인 사람입니다.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건 가게에서 먹는 음식 아닐까요?

나온 요리를 보고 입맛을 다시면서 그 자리의 분위기를 음미합니다.

 

나름 맛집을 뽑아서 다시 재방문해보고,

다 먹은 뒤 "아아, 다시 와서 좋았어."하고 생각하는 순간은 각별합니다.

그런 저지만, 그 중 1곳 아무래도 잊기 힘든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완전히 옛날 일이지만, 

당시 저는 라멘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역시 매일 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엄청 먹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맛집은 없을까? 

하면서 가게들을 찾아다니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산책을 하다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어떤 라멘 가게가 있는걸 발견했습니다.

 

그 라멘 가게는 거의 점심시간이 가까웠는데 

줄을 서기는 커녕 아무도 가게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맛이 어떤지 리뷰를 볼 수 있었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라,

사전 정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가게는 외관을 봐도 지저분해,

솔직히 말하면 폐업 직전이라는 인상을 받게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가게를 경계하며 절대 들어가지 않으려 할 겁니다.

하지만 전 반대로 관심이 생겨,

남이 피하는 곳이 숨은 맛집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먹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가게에 들어가보자,

"어서오세요."

하고 기세 좋은 중년여성분이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주방에는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조용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인 모양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빈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말을 듣고 근처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가게는 꽤나 세월이 오래된 모양새였습니다.

벽이나 천장에는 기름때가 달라붙어 있어,

조금 청소해서는 떨어질거 같지 않았습니다.

 

메뉴판도 사용한지 꽤 됐는지 낡아, 그 쓴 세월을 짐작케 했습니다.

하지만 써 있는 메뉴들은 제법 적어,

라멘도 '라멘'이라고만 딱 1개만 적혀 있었습니다.

(혹시 뭔가 고집하기라도 하는 아저씨네 가게인가.

이거 기대되는걸.)

 

완전히 좋게 이 상황을 받아들인 저는,

망설임 없이 '라멘'을 주문했습니다.

쪼르륵 나오는 물을 홀짝이고 있으니,

금세 라멘이 도착했습니다.

외관은 평범한 간장 라멘이었는데,

맑은 국물이 특징이었을까요?

 

얼른 먹어 보았습니다.

(이건...!!!)

 

저는 이 사태에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라멘이 엄청나게 맛대가리가 없었던겁니다...

국물도 밋밋하고, 맛도 깊이라고는 아예 없이 짜기만 했습니다.

 

마치 갈색 소금물을 마신 기분입니다.

면도 퍼석거려서 최악의 식감을 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만들면 이따구로 나온담. 

완전히 이애하기 어려운 1그릇의 라멘이었습니다. 

 

가게란 역시 음식을 파는 곳은 어떤 곳이라도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선 가게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라멘은 그런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맛이었습니다. 

 

너무 맛이 없어 라멘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먹지 못하고 있는 절 본건지 아저씨가 말을 걸었습니다.

 

"왜 그러신가, 형씨. 젓가락을 움직이지도 않고.

맛이 없는가?"

그런 말을 듣고서도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흐리고 얼버무리려 했지만,

아저씨는 강하게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말야 내 일의 자부심과 신념을 갖고 만들고 있어.

그러니까 손님도 가게에 들어온 이상 똑같은 기분으로 먹어 줘야 하는거야.

내 라멘이 맛이 없다 생각하면 너의 혀가 이상한거지.

아직도 미숙하구만. 국물도 전부 남기지 마!

남기면 2배로 돈을 내야 할테니까!!"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여자분을 보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 

눈으로 그녀는 사과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 먹지 못하고 2배의 돈을 내고 나와도 괜찮았지만.

때마침 2배가 되버리면 제가 가진 돈이 부족해집니다.

 

각오를 다진 저는 억지로 물로 라멘을 넘기며,

어떻게든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려 하니,

한 손님이 들어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오! 신기하게 손님이 왔구먼. 형씨 뭐 먹었어? 라멘?"

네 하고 대답을 하자, 그 손님은

"어라 먹었구나! 힘들었겠네~! 

맛없지 않았어?"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이상한 소리 지껄이지마! 내 가게를 망하게 할 작정이야!"

하고 소릴 질렀습니다.

 

손님은 "아니 라멘 가게가 맛이 없는 라멘을 내놓으면 어쩌겠어?"

그 말에 아저씨는 "중요한 것은 자부심과 신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입에 낼 말이 아니야!"

 

"여전히 남의 말은 안 듣는다니까~ 

옛날엔 괜찮았는데 말야. 나는 늘 먹던 만두랑 맥주 부탁해."

그런 대화를 주고 받는걸 지켜본 저는 얼른 가게를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배가 아프더니 구토를 하였습니다.

설사도 계속되는 등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 가게의 라멘은 두 번 다시 먹진 않았지만,

저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1그릇이 된 건 틀림 없습니다.

 

일에 자부심과 신념을 가진다는건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실감한 체험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라멘 가게는 없어지고,

그 자리는 주차장이 되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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