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괴담

[번역괴담] (25) - 손을 잡아당기는 아이

아이버스 2024. 8. 27. 10:03

남편과 저는 학생 시절에 만나,

25살이 될 때 결혼하였습니다.

 

같은 나이에 서로 고집도 있어 예나 지금이나 싸우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거 같습니다.

이건 그런 제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날 밤, 배가 아팠던 저는 겨우 회사에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쿠션을 베개삼아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30분 정도 있자, 그이가 돌아왔습니다.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저희는 당시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어라, 자는거야? 밥은?"

잠시 험악한 표정으로 그이는 절 내려다보더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절 넘어가 옷을 갈아입고

그대로 어디론가 나가버렸습니다.

어딘가 밖에서 먹고 오기라도 할건가요.

 

한 마디라도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았을걸.

상태가 안 좋은걸 보면 알 텐데요.

일어나니 복통이 좀 진정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슬프고 서러움이 느껴졌습니다.

 

도시 생활도 그이와의 생활도 지쳤다.

이제 됐어, 본가에 돌아갈래.

충동적이 되버린 저는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들고 역으로 갔습니다. 

 

마지막 버스는 앞으로 30분.

도로의 신사를 거쳐 가면 15분만에 도착.

돌계단을 올라 경내를 횡단해 다시 내려가면 역입니다.

 

신사는 축제였던 모양이라,

많은 인파나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그 사이를 지나던 때, 손을 꾹 하고 누군가 잡았습니다.

돌아보니, 거기엔 유카타(주 : 일본의 전통 옷)를 입은 남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여자애는 5살, 남자애도 3살쯤 되어 보였습니다.

 

그 당시 제가 모르던 애들입니다.

그리고나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이들이 손을 잡아당겨 개들을 따라 걸어가보니,

본 적 없던 장소에 와 버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무 틈을 통과해 가보았습니다.

나무에는 자주 까마귀들이 엄청 모여 있어,

눈이 마주치자 위협이라도 하듯 날개를 펼치며 까악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야, 괜찮아? 아직도 상태 안 좋아?"

몸을 흔들며 일어나 보니 눈 앞에는 그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새인가 저는 공원 벤치에 있었습니다.

 

남편은 장을 보고 돌아와,

제가 방에 없다는걸 알고 황급히 찾으러 다닌 모양입니다.

다행이 근처 공원에 있던걸 발견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습니다.

"아프지 않아서 놀랐어."

봉투 안에는 영양 드링크, 감기약, 얼음 베개, 위장약, 도시락, 레토르트 죽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야기 하는건 중요하네."

"마찬가지야."

 

이렇게 오해도 풀린 우리는 그 뒤로 얼마 안 가 결혼해,

남편과 제 사이에는 아들, 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애들인가요...

신사 경내에서 제 팔을 잡아당기던 그 애들과 쏙 빼닮았으니까.

 

설마 장래 태어날 제 아이들이 

저와 남편 사이를 돌려놓으려고 했던걸까요?

저의 단순한 기억 착오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딘가 운명적인 인연이 느껴지는 체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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